여행의 즐거움이라면 보통 관광(구경), 음식, 쇼핑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지의 건물, 거리 등의 풍경과 사람들 모두가 구경의 대상이고, 어찌됐든 삼시세끼를 해결하다보면 무엇이라도 먹게 되어 있기 때문에 관광과 음식은 여행에서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연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요소이다.
쇼핑의 경우는 필수적인 부분과 선택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명품백을 사거나 공항 면세점에서 시계나 전자제품, 향수 같은 물건을 사는 것은 선택적인 쇼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필수적인 쇼핑은 커피나 차를 사서 마신다든지, 물을 산다든지 버스 티켓이나 택시 요금을 지불하는 등의 생존, 이동과 관련된 요소들이다. 터키는 선택적인 쇼핑에서 본다면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 알려진 명품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자제품이나 화장품의 가격적인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카페트 등 일부 유명하고 품질이 좋다고 알려진 제품들이 있으나 품질 좋은 카페트는 대다수의 일반 관광객들이 선뜻 구입하기에는 고가이고 부피 또한 크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은 -비록 판매상의 극진한 환대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티셔츠, 찻잔 세트, 냉장고 자석, 책갈피, 작은 킬림(kilim)이나 터키 풍의 조명 같은 작고 저렴한 물건들이나 바클라바, 로쿰, 툴룸바 등 전통 후식 종류들이 있다. 그럼에도 사는 행위로서의 쇼핑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구경하는 재미에 의미를 두면 터키는 쇼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꽤 매력적인 곳이다. 전통적인 거래 방식인 흥정이 있고, 늘 유쾌한 상인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요즘엔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운이 좋으면 차 한잔을 대접 받을 수도 있다.
필수적인 쇼핑이든 선택적인 쇼핑이든 터키에서 쇼핑을 해야 한다면 가능하면 기분 좋은 경험, 아니 최소한 상인과 구매자 상호간의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로 여행을 망치는 것은 피할 필요가 있다. 매매에서의 터키인과 한국인의 문화적 차이는 무엇인가?
먼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낮은 신분으로 여기던 한국의 전통적인 관념과는 달리, 이들에게 상인은 선지자의 직업으로 자랑스럽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직업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라 거래에서 정직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저울 눈금 속이는 것이 무거운 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고 돈 앞에 장사가 없는 법. 상인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각종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행위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많은 배경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문화적 배경이다.
종교적인 배경 외에도 문화적으로 유목민이었던 터키인들은 정착이 삶의 근간이었던 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사고하는 방식과 생활 습성이 다르다. 이러한 점은 돈을 내고 물건을 얻는 거래 행위에서도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먼저 이들은 거래할 때, 거래에서 오는 이익만이 고려의 대상이다. 오랜 시간 한 곳에 조상 대대로 정착해서 살면서 이웃의 평판을 관리해야 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농경문화의 후손인 한국인과 달리 이들은 목초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던 유목민이다. 이들에게는 평판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한 화두였다. 매매와 거래, 물물교환을 할 대상을 만나더라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대에게 좋은 평판을 얻는 것보다는 거래에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거래의 대상이 한번 보고 말 관광객이라면 호구 삼기 더없이 좋은 환경과 대상이 아닌가?!
이러한 점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거래를 할 때에는 그 거래를 통해 얻어질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터키의 상인들은 먼저 자신이 얼마나 정직하고 좋은 상인인지를 어필하고자 한다. 이상적인 상인에 대한 관념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소 민망하게 들릴 수 있는 수식어로 자신에 대한 홍보전을 펼친 후에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되면 이들은 곧바로 이익실현이라는 가치에 몰입한다. 때로는 이 둘 사이의 간격과 급격한 태세 전환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일 수 있다.
먼저, 이들은 정직을 추구한다. 저울 눈금 속이는 것을 무거운 죄라고 가르치는 종교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고 돈 앞에 장사가 없는 법. 상인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각종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행위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많은 배경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문화적 배경이다.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라 불리던 교역로와 그 종착지에서 생활했던 중앙아시아, 중동의 유목민들은 대대로 거래라는 행위에
1. 미리 가격을 물어보라.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고 터키의 물가를 모른다면 가격을 물러보는 것이 당연한데, 이게 무슨 팁이냐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행 초반에 물건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행을 하고나면 물가에 대한 대략의 감이 생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대충 이 정도 가격이겠지’ 하는 짐작과 상인의 나쁜 의도가 만나면 여행의 흥을 깨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예상치 않던 바가지를 쓰는 것이다.
지금 터키에서는 1-2리라 정도면 차이 한 잔을 사서 마실 수 있다. 이 가격은 바르닥(bardak)이라도 부르는 손잡이가 없고 투명한 유리로 된 허리가 잘록한 찻잔이다. 그런데 같은 차이라도 어디서, 어떤 잔에 마시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실제로 양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핀잔(fincan)이라고 부르는 손잡이가 달린 잔은 보통 바르닥 차이보다 훨씬 비싸다.
한 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차이를 파는 매장에 따라 25리라까지 받는 곳이 있다고 한다. 차이 1킬로짜리 한 봉지 가격이 품질에 따라 30-40리라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25리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지만, 물장사라는게 다 그렇지, 분위기 값이라고 치자. 그런데 여행 중간에 길거리의 허름한 가게에서 차이를 한 잔 사서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가게 주인이 “10리라입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경찰을 불러서 따지기엔 너무 소액이고 그냥 넘어가기엔 매우 화가 나는 가격이다. 무엇보다 이런 경험이 여행으로 즐거웠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는 가장 간단한 길은 미리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다. 아무리 뻔해 보이는 가격이라도 미리 물어보고 시키는 습관을 가지자.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 일이니까.
2. 돈은 가장 최후의 순간에 지불해라.
소비자 입장에서 터키와 한국의 거래 습관 중에 가장 차이를 보이는 점은 돈을 지불한 전후의 주인의 태도이다. 쇼핑을 하다보면 물건을 봉지에 담기 전후에 물건값을 치르고 그 후에도 이것 저것 구경을 하거나 추가 구매를 하며 가게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터키에서는 돈을 내기 전과 후, 주인의 태도가 극적으로 달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이 있다. 돈을 내기 전까지는 차도 대접하고 농담도 하면서 세상 친절했던 사람이 돈을 건내고 나면 갑자기 나를 유령 취급하는 것이다. 더 이상 말을 걸지도, 내가 농담을 건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심한 경우 물건에 대해 질문을 해도 대답도 잘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태도의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짐작으로는 거래 종료 시점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손님이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고 문을 나서면서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상인과 고객의 거래 행위가 끝났다고 이해하는 반면, 터키에서는 돈을 지불하는 순간 그것이 끝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므로 더 물어볼 것이 있거나 내가 가게를 완전히 떠날 것이 아니라면 돈을 지불하지 말고 물어볼 것을 다 물어보고, 차도 얻어마시고 대화도 나눈 후에 문을 나서기 직전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좋다.
3. 상식적으로 판단하자.
비록 문화가 상당히 다른 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것은 터키에서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경로를 생각할 때, 뜻밖의 후한 호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야 상식적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긴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길목에 매일 이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나 가게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여타의 다른 식당과 달리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내가 주문하지 않은 곁다리 음식이 나온다면 ‘이크람(접대의 의미로 무료로 주는 음식)’인지 꼭 물어보고 먹어야 뒤탈이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관광객이 주로 가는 지역과 현지인이 주로 사는 지역이 있고, 당연히 두 지역의 물가는 다르다. 사실상 현지의 관점에서 관광지구에는 비싼 집은 있을지 몰라도 맛집은 있을리가 없고, 있다 할지라도 굳이 거기까지 가서 먹을만큼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관광지구에 사기꾼과 사건이 더 많은 것은 덤이고.
반대로 A라는 가게에서 산 물건이 B라는 가게에서 거의 절반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하더라도 A가게가 딱히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관광객이 맛집을 검색하고 알아보고 오지만, 맛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인이 평가하는 맛집과 관광객이 평가하는 그것이 다를 수 있고, 같아 보이는 물건이 다른 경우도 있다. 바클라바나 로쿰 같은 것도 모양이 같다고 원가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매장마다 가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무조건 의심의 눈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4. 기회비용이라 여기고 빨리 잊자.
현지인 상인과 관광객은 정보의 불균형이 매우 크다. 특히 물가변동이 심한 터키와 같은 곳에서는 인터넷과 각종 여행 사이트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정보 격차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 또 맘 먹고, 양심은 집에 빼두고 온 현지인을 상대로 말로 싸워서 이기려면 상당한 언어 실력과 논리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경찰에 신고하여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이며 일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은 관광을 온 것이므로 현지에서의 좋은 경험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가장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지금과 같이 물가 변동이 싯가 수준으로 변동이 심하고,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는 낯선 이방인을 등쳐서라도 더 많은 돈벌이를 하려는 유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할 것이다. 실제로도 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속고 속이는 복마전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므로 외국인 관광객으로서는 피하는 것이 사기를 완전히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약간의 사기 피해를 당했다면, 현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작용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빨리 잊는 것이 좋다. 물론 이미 상할대로 상한 기분이 저절로 돌아오진 않겠지만…